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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 스포츠: 리미노이드 플레이어

리미노이드가 뭔데?

영국의 문화사회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리미노이드 Liminoid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리미노이드란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과 지위에서의 행복이 절정 단계에 도달했을 때의 느껴지는 감정으로, 플레이어 스스로에게 필수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은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단계로 대단히 압축적이고 비일상적인, 즉 ‘신성한’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터너가 앞서 발표한 리미널리티 Liminality 경험 이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서 리미널리티란 ‘문지방 Limen에 서있는 것’과 같이 평소에는 금기시 되지만 순간적으로 극도의 흥분과 일탈이 용인되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 개념이 왜 XR산업에서 중요한 걸까요? 바로 이 이론이 XR콘텐츠를 건강한 여가로 즐기며 새로운 삶의 에너지로 작용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비유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빅터 터너가 산업 사회 속 리미널리티에서 리미노이드로의 전환에 관해 집필한 유명한 에세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산업 혁명이 노동과 놀이의 연결을 완전히 끊어냈다는 부분인데요, 예를 들어 과거의 놀이는 다산, 번영 등 제의적 가치를 띄는 경향이 강했으나 산업 혁명 이후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산업 혁명과 기술의 발전을 거쳐 동시대 인류는 과거와는 다른 양질의 자유 시간을 갖고, 리미노이드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XR 기기를 오직 순수한 여가를 위해 구매하는 등의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약 50년 전의 에세이 속 이 개념, 공부와 업무 등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VR을 끼고 콘텐츠를 즐기는 내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

리미노이드 스포츠

출처: 게티 이미지
EPL, NBA, KBO와 같은 스포츠 또한 일종의 리미노이드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중석에 앉은 나와 주변 사람들 모두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벗어나 평등한 관계에서 응원을 하고, 친밀감을 형성하지 않았던 사람과도 단번에 동지애를 느끼며 합일됩니다. 그렇다면, 실제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응원하지 않는 메타버스 속 스포츠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느낄 수 있을까요?
우리는 VR기기를 착용하고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모호하고 불안정한 상태인 리미널리티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기 내의 영상과 같이 수동적인 체험과 컨트롤러로 인터랙션을 통제하는 능동적인 행위의 균형 잡힌 소통방식으로 하나의 경험을 얻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리미노이드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은 단순히 사물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단순한 현실세계에서의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의식 단계를 거치도록 해주며 우리는 이 단계를 통해 기존의 자아가 소멸되고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 이전 환경과의 구분을 유지하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즉, 소멸과 탄생의 과정에서 우리는 리미널리티 영역을 거치며 리미노이드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VR 영상 콘텐츠와 달리, VR 스포츠 콘텐츠는 매번 새로운 미시적 체계를 생산해 내 경험하게 하는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EPL에서 축구는 매 경기 하나하나가 새로운 경기로 다가오고, 매 경기에서 생기는 순간들은 관중들에게 매번 다른, 다양한 리미노이드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역전을 통해 지루한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거나 오심 또는 반칙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경험하는 보편적이고 인과적인 삶의 형상들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상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리미노이드적 경험을 할 수 있고 어쩌면 스포츠와 VR, 두 영역이 만나 더욱 극대화된 체험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리미노이드 체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VR+스포츠 콘텐츠는 무엇이 있을까요? 고민하실 구독자분들을 위해 몇 가지 콘텐츠를 추천해보고자 합니다.

QUEST, 23-24 시즌 NBA 경기를 180도 몰입형 콘텐츠로 제공

이번 시즌, NBA는 Quest 헤드셋을 통해 52경기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Quest 2, Quest Pro, 또는 Quest 3 소유자는 추가 비용 없이 Xtadium XR 스포츠 시청 앱을 통해 가상의 180도 코트사이드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Xtadium는 NASCAR 무료 스트리밍도 제공하며, Fight Pass 구독자를 위해 UFC 경기도 제공합니다. 무료 NBA 경기는 Meta와 NBA의 파트너십을 통해 다년간 제공되며, 이로써 Quest는 "NBA의 공식 VR 헤드셋"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메타는 11월 17일 구단 팬들과 플레이할 수 있는 농구 게임과 메타버스 아바타를 위한 NBA 유니폼도 출시할 계획이라 밝혔습니다.

Real Madrid Virtual World

빅클럽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는 메타버스 플랫폼, RMVW(Real Madrid Virtual World)를 공개했습니다. 10대 유저 중심의 메타버스 플랫폼과 달리 20대 이상 유저를 고려한 포토리얼리스틱 그래픽으로 실감형 XR 메타버스를 구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홈구장인 베르나베우 스타디움과 선수들이 훈련하고 휴식하는 레알 시티를 3D로 제작해 4.5억 명의 전 세계 팬들에게 가상 경험을 제공합니다. 실제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의 VIP룸을 본떠 만들어진 메타버스 속 VIP Room에서 경기 또한 관람 가능하다고 합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과 AR 사진도 찍고, 120년이라는 긴 구단의 역사 또한 디지털 박물관 내에서 관람 가능합니다. 이 메타버스를 구축한 기업이 바로 3D Factory라는 한국 기업이라고 하는데요, 이 기회에 한국 마드리디스타분들은 한번 리미노이드 체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로블록스 FIFA 월드

출처: www.fifa.com
22년 10월, FIFA와 로블록스는 FIFA 월드를 출범했습니다. 현재 FIFA 월드는 로블록스 커뮤니티를 통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게임보다는 축구팬을 위한 가상공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파의 각종 영상을 감상할 수 있으며, 소셜 공간에서 팬들과 어울리고 간단한 미니 게임 및 아이템 수집 미션등이 주 콘텐츠입니다.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로블록스와의 협업 덕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해 지루하지 않은 꾸준한 콘텐츠와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2023 FIFA 여자 월드컵 등 큰 이벤트 시즌에 맞추어 스포츠 팬들에게 새로운 창구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기존에 FIFA는 EA와 약 30년 동안 독점 계약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만료 후 ‘게임’이라는 키워드보다 ‘메타버스’를 선택한 FIFA의 행보에 따라 앞으로 스포츠 메타버스 계의 움직임이 궁금해집니다.

두 번째 디지털 신인류, 리미노이드 플레이어

필자의 첫 번째 뉴스레터에서 메타버스 속 신인류 중 한 종류를 ‘디지털 플라뇌르’라고 정의했는데요. 관조적 행동을 통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상 공간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면, 메타버스 속 콘텐츠를 체험한 후 개인의 교훈적 경험으로 전환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점점 모호하게 만드는 것 리미노이드 플레이어라는 두 번째 디지털 신인류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사회에서 제의적 콘텐츠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생산성을 독려하는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은 스포츠, 게임 등 다양한 리미노이드들이 사회를 떠다니며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발전적 경험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메타버스 콘텐츠로 50년 전, 심지어 불과 5년 전보다 몇십 배 더 생생하게 물리적 한계를 넘은 리미노이드를 경험하고 새로운 나만의 상징을 산출해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의 물리성을 대표하는 스포츠와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는 기름과 물처럼 이원대립의 관계로만 보이지만, 리미노이드 체험처럼 XR 기술을 통해 ‘문지방 Limen에 서있는 것’과 같이 스포츠를 즐겨본다면 또 다른 중립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성자: 김지영]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