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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는 왜 유행했을까?

출처:IMDb
20년대 초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뜻풀이를 곱씹어보면 너무도 거창한 포부를 담은 단어가 있습니다. 초월과 세계를 담은 이 단어는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보내버릴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이 단어가 하나의 유행으로 들불처럼 번지며 온 세상, 특히 한국을 뒤흔들었던 시간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 · ·
메타버스. 한 때는 뉴스에 개근하다시피 나오던 단어였고, 다시 없을 별천지처럼 여겨졌습니다. 유행을 한다는 이유로 유행을 하고,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하루가 멀다 하고 입에 올리니 그들의 주가 역시 요동쳤습니다. 그러나 2024년 중순, 지금, 메타버스의 화제성은 희미해졌습니다. 드문드문 언급되더라도 호응은 절대 예전 같지 않으며, 이제는 메타버스를 말하기만 해도 학을 떼는 이들도 종종 있습니다.
왜 메타버스는 유행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유행이 사그라들었으며, 다시 유행할 수 있을까요? 먼저 메타버스 유행이 시작하게 된 이유를 하나씩 알아보러 가 봅시다.
※ 본 칼럼에서는, 202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2020년 봄 즈음부터 급속도로 성장한 메타버스 광풍을 1차 대유행이라 하겠습니다.

화려하게 빛났던 1차 대유행

메타버스에 관심이 있다면 어느 기사든 칼럼이든 질리도록 접해보셨을 1992년 작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닐 스티븐슨의 《스노우 크래시》입니다. 처음으로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창시하고 해당 단어를 주된 주제 의식으로 사용했으며, 심지어 아바타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지금 우리가 아는 ’아바타‘로 가져온 소설이죠. 그러나 오늘은 이 고전 작품을 오랫동안 설명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1. ‘또 다른 가상 세계’에 대한 미디어의 빌드업

필자가 직접 제작한 메타버스에 영향을 준 미디어 연표. 출처 : Disney, ISFDB, IMDb, Daybreak Games, Trey Ratcliff, IGN, Electronic Arts, SecondLife, 20th Century Studios, Ubisoft, VRChat
2020년,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새로운 기술에 익숙한 사람들뿐이 아닌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데에는, 비단 《스노우 크래시》 뿐만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닙니다. 대중들은 오히려 《스노우 크래시》를 최초로 메타버스를 말한 소설로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았죠.
대중들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 유행으로 번진 이유는, 꾸준히 제작되어 온 수많은 미디어 컨텐츠가 미리 메타버스의 다양한 단면을 엿보도록 해준 덕분입니다.
아주 오래전, 신화시대부터 인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고 내렸습니다.
[트론]과 《뉴로맨서》 등의 작품을 읽으며 가상 공간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MMORPG 『울티마 온라인』에서 수많은 이들실시간 온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매트릭스]는 가상 현실 개념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은 이세계물 유행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이브 온라인』은 현물 가치가 가득한 가상 공간 경제 체계의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플래닛사이드』는 1인칭으로 수백 명과 가상 공간에서 한데 모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소설 《스노우 크래시》의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가상현실 플랫폼으로, 여타 게임과 다른 자율적인 온라인 상호작용을 가능케 했습니다.
『VRChat』은 1차 대유행의 중심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지금도 가장 메타버스에 근접한 가상현실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특히 메타버스에 대한 상상력의 끝, 메타버스의 이상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외에도 메타버스와 관련된 주제 의식을 담은 미디어들은 꾸준히 등장하며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2. COVID-19로 인해 강제성을 갖게 된 ‘현실의 대안’

현실에서 입학식을 쉽사리 진행할 수 없기에 진행된 순천향대학교의 점프VR(SK텔레콤)에서의 입학식. 25일 뒤, 한국의 COVID-19 누적 확진자는 10만 명을 돌파했다.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폐렴 증상의 새로운 전염병이 보고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끔 뉴스 헤드라인에 올라오는 특별하지 않은 전염병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바로 3년 가량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라는 걸 알고 있죠.
판데믹 이전에도 언택트 기술은 미래 가치가 높은 기술 중 하나로 꼽히곤 했습니다. 한국의 음식 배달 시장과 홈쇼핑 시장이 선구자 격이라는 기사가 외국에서 나오고, 아마존 등 주요 물류 회사들 역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고 드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뱅킹이나 검색 엔진 같은 경우에는 이미 2000년대 초 붐이 일어난 이후 꾸준히 우상향 하기만 했으니, 2020년에 접어들어서는 안정적이다 못해 당연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언택트 서비스들은 항상 현실의 보조에 불과했습니다. 현실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곧 사회의 기본값이었고, 재택근무나 비대면 수업 같은 경우는 특이한 케이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판데믹 이후, 현실은 정확히 거꾸로 뒤집혔습니다. 그 누구도 쉽게 만날 수 없고, 그 누구도 물리적 현실을 자유롭게 누빌 수 없는 상황.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개개인은 삶을 지속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현실이 실종된 상황에 맞춰 반드시 현실의 대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때 선택된 대안이 현실의 보조 역할을 유능하게 해내던 가상/전자 기반 시스템이었고, 개중에 감각 측면의 몰입과 시각적 공간에 대한 수요를 다른 수단보다 더 채워줄 수 있는 후보로, 메타버스가 선정되었습니다.

3. 기회 실현을 가능케 한 기술의 받침

그러나 기본적인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대중들에게 금시초문일 뿐인 개념이 이토록 거대한 기회를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언택트 기술, 특히 기존 온라인 게임이나 메신저 플랫폼과는 달리 확실히 메타버스로서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했습니다. 바로 VR이죠.
Sensorama 기계. 출처 : Virtual Speech
VR에 대한 상상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 최초 묘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실질적으로 1956년 개발된 Sensorama가 최초로 구현된 VR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수 스크린으로 표출하는 3D 화면, 스테레오 스피커에서 나오는 입체 오디오, 알맞은 진동이나 바람으로 구현한 촉각적 자극, 심지어 냄새까지. 6개의 단편 영화뿐이고 장치가 많이 필요한 시뮬레이터의 포맷이지만, 무려 70년 전 즈음의 이야기라는 걸 생각하면 대단할 따름입니다. 이후로도 1968년에는 최초로 컴퓨터 연결 HMD가 개발되고, 7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파일럿 훈련을 위한 시뮬레이터 발전이 이어졌지만, 이 사례들로 대중성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2013년 4월자 〔나 혼자 산다〕 방송에 나온 소니 HMZ-T3W. 출처 : MBCEntertainment
바로 1차 대유행이 시작했던 2020년의 VR 시장을 생각해 봅시다. 오큘러스(메타)와 HTC, SONY(PSVR) 등이 각자의 브랜드를 앞세워 각축전을 벌였고, 이는 2018년 비트 세이버를 필두로 한 VR 게임 유행으로 한 차례 가속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VALVE 측에서도 하프라이프: 알릭스 발매 이후 머지않아 본인들의 VR 기기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풀-트래킹 장치가 보급되고,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VR 기기들은 관심 있는 유저들에게는 상품으로서 구매할 만한 가치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대중들을 위한 VR 기기들의 가격은 오히려 인하. 2016년쯤 가장 적절한 기능을 갖추고 있던 HTC VIVE가 799달러, 한화 125만 원이라는 높은 초기 가격으로 설정된 것에 비해, 2020년 9월 출시된 메타 퀘스트 2의 경우 초기 가격을 299달러, 한화 약 41만 원으로 책정하여 그야말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주요 도시에 테마 카페가 집중된 지리적 특성상, VR 기기와 체험 장소를 구비한 VR 카페 역시 곳곳에서 성업하며 VR 기기를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도 원한다면 VR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4. 3차원 공간으로 구현되는 메타버스의 강력한 확장성

마지막으로, 메타버스의 공간적인 특성이 메타버스의 사업 트렌드화에 큰 몫을 했습니다. 신기술이라 하더라도 그 적용 분야가 특정되어 있거나 B2B 전용에 가깝다면 소비자들은 기업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만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기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 원천 기술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제품군으로 정착한 상태여야 합니다.
그런데 메타버스는 달랐습니다. 분명 VR 기기는 하나의 제품군으로 정착했지만, 우리가 1차 대유행에서 볼 수 있었던 메타버스는 굳이 VR이 아니어도 메타버스라 불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바일 환경의 3차원 가상 공간도 메타버스, PC 환경의 3차원 가상 공간도 메타버스를 자칭했으며, 기업들은 너도나도 자체 앱에 아바타 기능과 방 꾸미기 기능을 추가하며 메타버스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테크, 식품, 게임, 건축, 제조업 등등, 메타버스를 도입한 기업의 사업 분야들에 어떠한 제약도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의문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특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3차원 가상 공간이 구현된 게임과 메타버스의 비교를 해야 합니다. 후술하겠지만, 기업들이 내놓은 메타버스와 기존의 3차원 가상 공간 게임들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다만 유일하고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이름 그 자체입니다. 이제는 꽤 익숙해졌고, 일부는 극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임’이 아닌,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의 단어 ‘메타버스’와 함께라면, 게임에 문외한이거나 게임을 혐오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을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업들은 3D 가상 공간 서비스를 키워드 세탁까지 하면서 하고 싶어 할까요? 이에 대해서 필자가 이 현상을 공간 이론적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넓은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스마트폰 역시 가상 공간 플랫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층으로 나눠진 간단한 깊이 축과 넓은 면으로 구성되었을 뿐입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24_7_retrieve’
먼저 메타버스와 비슷하게 신기술이 집약되어 하나의 인프라가 된 다른 사례, 스마트폰을 생각해 봅시다.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하고, 이후 안드로이드폰이 득세하여 두 개의 큰 축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정렬되었습니다. 이에 다른 기업과 소비자들은 두 개의 기업이 조성한 스마트폰 생태계에 군말 없이 따라야만 했습니다. 이는 세상이 두 축으로 돌아가는 스마트폰 세상을 하나의 당연한 인프라로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앱 개발 역시 메타버스와 비슷한 유형의 확장성을 띠고 있습니다. 테크, 식품, 게임, 건축, 제조업 등등. 똑같이 온갖 분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타버스의 이름 아래에서는 스마트폰 이상의 인프라, 사실상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메타버스가 공간, 그것도 3차원 공간으로 구현되는 것.
3차원 공간의 힘은 생각보다 더욱 강력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앱이 보여주는 2차원 공간을 보면 텍스트 정보 또는 영상 매체라는 평면적 인식을 하게 되지만, 3차원 공간을 보면 그 스케일과 그래픽 스타일, 실감이 다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공간과 유사한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메타버스 1차 대유행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
메타버스(3차원 가상 공간)에서는 모든 공간 제작자가 저마다의 규칙을 사용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다. 즉, 메타버스는 3차원 공간이며, 그 자체로 개별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메타버스 1차 대유행 이전에, 기업은 물론 정부 기관이나 행사 조직, 비영리단체 등 현실에서 규칙이나 아젠다가 명확한 집단들은 스마트폰, 책, PC 모니터 등 이미 굳어진 2D 디스플레이 인프라에서 본인들을 소개·설명·증명하려면 2차원 공간에 본인들의 컨텍스트를 맞춰 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메타버스를 제작한다면 상황은 반대로 바뀌게 됩니다. 본인들이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3차원 공간이 생기면, 그 내부의 컨텍스트를 전부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사용하면 되니 말이죠. 3차원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인 이상, 그 공간에서 사용자들은 기본적으로 해당 공간에 소속됨을 느끼기 때문에, 제시된 컨텍스트들을 일차적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인류가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좋아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었습니다. 벽을 침으로서 본인들의 제어권을 공고히 하고, 그 안에서 본인들의 컨텍스트를 개진한 hortus라는 정원의 원형 개념은 이후의 공간 개념의 기본 값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심지어 사용자 개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몇몇 메타버스 컨텐츠들이 사용자들에게도 방을 나눠주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아바타 한 개와 방 한 개를 받은 사용자들은 본인들의 아바타와 방을 꾸미는 데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해당 메타버스의 주체가 본인들이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3차원 공간 개념을 선호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로, 소비자들 역시 내가, 나만이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의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이유로 거의 모든 개인과 집단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파편으로만 남은 1차 대유행과 그 증상들

그러나 지금, 메타버스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메타버스를 찬양하던 언론들은 침체한 메타버스 시장을 물어뜯고 있으며, 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가 철저하게 우하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이유를 하나하나 정리해 봅시다.

1. 아직 발전 중인 기술과 많이 부족한 컨텐츠

AVGN의 버추얼 보이 리뷰. 버추얼 보이는 1995년에 출시되었으며, 실험적이고 미완성적인 측면이 많은 초기 HMD 구현 시도다. 리뷰는 혹평으로 가득 차 있다. 출처 : AVGN
비록 메타의 시장 참여 이후 VR 기기의 발전 속도가 빨라졌지만, 여전히 VR은 주류라 하기에는 보급화가 부족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컨텐츠가 게임인 VR 시장은 사실상 과거 닌텐도의 실패작 버추얼보이처럼 특이한 게임기로 보이기 마련이었고, 특히 1차 대유행 당시에는 일상성을 갖기에는 현저하게 부족한 기술력이었죠. 특히 1차 대유행 당시, 개발 완료되어 퍼블리싱된 VR 컨텐츠들은 폭증한 수요를 맞추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유흥을 제공할 게임기로서는 잘 기능했지만, 현실의 대안 즉 일상성·동시성·쌍방향성을 갖는 게임 그 이상의 메타버스 컨텐츠는 요원했습니다.
물론 유일하게 해당 자격을 갖춘 완성된 컨텐츠가 있었습니다. 바로 VRChat이 그 주인공인데, 특이하게도 이 VRChat은 전 세계적으로 - 한국에서는 유난히 - 서브컬쳐 내지는 비주류 인터넷 문화가 선점을 한 상태였던 터라 대중을 향한 확장성 측면에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VR에 관심이 지대하던 이들이 메타버스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VRChat을 추천하거나, 일련의 결정권자들에게 유의미한 차별점을 가진 메타버스로 추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1차 대유행을 지나며 VRChat은 분명 사용자 수가 늘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VRChat을 메타버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하기는커녕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전적 정의가 부족한 메타버스 개념을 경험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컨텐츠가 있음에도, VRChat의 대명사화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 판데믹 종식과 함께 되돌아온 물리적 현실

COVID-19 유행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뉴 노멀이라는 단어가 메타버스의 1차 대유행과 함께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COVID-19의 엔데믹화로 인해 영원히 마스크 노이로제에 시달려야 하고, 물질적 현실에서의 대면 활동 대신 가상 현실 - 메타버스는 물론 인터넷 전반 - 에서의 비대면 활동이 기본값이 되는 등, 말 그대로 ‘새로운 상식’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 이는 전문가들의 말들에 의해 더욱 신뢰도를 높여 갔습니다. 한국의 중앙방대책본부장은 COVID-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며 방역 협조를 간곡히 부탁했고, WHO는 21년 9월에 실제로 엔데믹화를 선언했으며, 유발 하라리 등 세계의 현인과 석학들 역시 COVID-19가 세상을 바꿀 것이고 이미 바꾸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2022년 상반기에 경기도청이 실시한 COVID-19 이후 일상 회복에 대한 설문조사. 극단적인 뉴 노멀을 생각하는 이는 1%에 불과했다. 출처 : 경기도청
그러나 2024년 지금, 뉴 노멀 대신 포스트 코로나가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분명 COVID-19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전보다 언택트 기술에 익숙해졌지만, COVID-19으로 인해 파괴된 일상은 회복되었고, 강제로 가상 현실에 도피해야 했던 인류는 자유롭게 물리적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많이, 더 절실하게 물질적인 일상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하여 메타버스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습니다. 설령 메타버스가 정말 유의미하게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굳이 물리적 현실을 두고 메타버스를 사용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말이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가 물리적 현실에 앞서는 특장점을 가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은 지금도 꾸준히 메타버스를 연구하거나 개발하고 있습니다. 즉, COVID-19로 인해 가불이 된 것일 뿐, 메타버스 개념과 메타버스에 필요한 기술에 대한 개발은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지고 있던 것이죠. 그러나 특정 이들에게는 ‘COVID-19가 종식되었고 뉴 노멀은 없다’는 간략한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들은 앞서 이야기한 연속적인 메타버스 개발사 위의 인물들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로, 현실의 대안을 자처했으나 기존 개념을 메타버스로 오용한 사람들입니다.

3. 메타버스를 오용한 기존 개념 과장 사례의 범람

앞서 ‘3차원 공간으로 구현되는 메타버스의 압도적 확장성’에서 언급된 것처럼 메타버스는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3차원 공간이라는 특장점을 기반으로 다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메타버스 대유행이 지속되며, 점차 시장에 앞다퉈 등장하는 메타버스들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 역시 늘어났습니다.
우선 메타버스는 2024년 현재에도 명확하게 합의된 정의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담론입니다. 오히려 그 불명확함이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어느 곳에나 붙여도 되는 요소로 적용하기도 했죠. 그러나 미디어에서 대중은 꾸준히 다른 세계와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을 쌓아 왔습니다. 즉, 대중이 바라는 메타버스의 범주와 능력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든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메타버스 개념은 상당히 과장된 채로 대중들에게 공급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직접, 메타버스를 오용한 사례들을 찾아봅시다. 이를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이견의 여지가 없이 명확하게 정의된 다른 개념들을 메타버스라 칭한 경우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출처 : 펄어비스
출처 : Charlie INTEL
오래전부터 운영되고 있는 기존 게임 장르가 메타버스로 되곤 했습니다. 펄어비스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 『DokeV』를 메타버스라 홍보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잘 만들어진 MMORPG와 차별화된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크래프톤의 ‘한국판 심즈’ 『inZOI』 역시 무수한 언론에서 메타버스라며 단어 남용을 했으나, 점차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 등의 올바른 용어로 바로잡아진 모습입니다.
모바일 기반 3D 플랫폼은 유난히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기능과 사설 공간 공유 기능을 지원하는 『이프랜드(ifland)』와 『제페토(ZEPETO)』가 있습니다.
출처 : ZEPETO
출처 : Roblox
하지만 이들 이전에 『마인크래프트』, 『게리모드』, 『로블록스』 등이 표방하고 있는 온라인 3D 샌드박스 게임/플랫폼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커스터마이징이나 공간 꾸미기 기능의 자유도는 기존 플랫폼보다 부족한 면이 많죠. 물론 이 중 『로블록스』는 메타버스 1차 대유행 당시 시류에 편승해 플랫폼에 메타버스 분류를 공식적으로 도입하는 등 사업 확장을 시도했으나, 지금은 메타버스 관련 컨텐츠를 플랫폼에서 제거한 상태입니다.
출처 : ZEPETO
출처 : 게임와이
또한 모바일 3D 플랫폼의 경우는 『싸이월드』, 『세이클럽』 등의 마이크로 블로그 또는 SNS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커스터마이징 기능, 마이룸 기능, 공간 공유 기능 등이 중복되며, 유일하게 다른 점은 3D 그래픽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즉, 『이프랜드』와 『제페토』 등은 기존 단어를 차용하자면, 모바일 기반 3D SNS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제일기획 매거진
출처 : 게임메카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개념과 메타버스 개념이 독립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만약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기능만으로도 메타버스로 부를 수 있다면 모든 『심즈 시리즈』는 물론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지원되는 모든 온라인 게임이 메타버스로 불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기존 게임은 메타버스를 자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바일 기반 3D 플랫폼의 가장 큰 문제는, 기존 게임들보다 더 적은 기능을 지원하면서도 메타버스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정 장르들을 혼합하여 더 많은 기능을 지원한다면 새로운 게임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해당 사례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만약 새로운 게임 장르로 인정받더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본 메타버스는 고작 게임 장르 중 하나로 만족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출처 : Metamask
출처 : 한국경제TV
PC 기반 인터넷 3D 컨텐츠 역시 메타버스를 자처하는 경우도 다수 존재합니다. 지금도 출시되고 있는 여러 메타버스 미술관이나 기업이 출시한 메타버스 서비스들 중 일부가 이에 해당하는데, 근본적으로 이 서비스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입니다. 2D UI가 아닌 3D NUI를 함께 지원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이전부터 다수 존재하며, 3D 그래픽을 메타버스의 근거로 볼 경우 토스 홈페이지도, 메타마스크 홈페이지도 메타버스가 됩니다.
출처 : ZEPETO
출처 : POP-POP
출처 : Base of Clans
출처 : Google Play
방 꾸미기 게임의 경우 오래전부터 그 사례가 다수 존재합니다. 고릿적 시절의 플래시 게임은 물론, 미니게임으로 게임머니를 벌어 방을 꾸미는 『#oneroom』은 2010년대 이미 출시되었습니다. 또한 개인 공간 공유 및 인터랙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서비스 구조는, 『클래시 오브 클랜』·『붐 비치』 등의 맵 빌딩 전략 디펜스 게임 그리고 『타이니 팜』·『쿠키런 킹덤』 등 맵 꾸미기 경영 게임의 요소와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또한 VR을 사용하지 않는 모든 서비스가 메타버스로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한 반론 역시 존재합니다. 이는 3인칭으로 캐릭터를 조종하는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인데, 사용자에게 아바타와 물리적인 일체감을 줄 수 없는 서비스가 과연 메타버스가 될 수 있는가로 이어지는 철학적 담론입니다. 3인칭 아바타를 조종하는 경우 기존의 3D 게임과 차별성을 찾기 어려우며, 1인칭 시야를 지원하더라도 HMD가 아닌 2D 모니터를 사용하는 이상, 기존 1인칭 게임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관점도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다수의 사용자와 온라인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기능의 경우 MMO 게임 장르가 오래전부터 구현에 성공했으며,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또한 시뮬레이션, 꾸미기 장르 게임으로 치환하여 지칭할 수 있습니다. PC 메타버스 플랫폼은 3D 렌더링 기능을 구현한 홈페이지에 불과하고, 모바일 메타버스 플랫폼은 3D SNS 또는 3D 온라인 모바일 게임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확인한 분명히 다른 개념으로 존재하는 사례들의 대부분은 앞서 메타버스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을 높여준 미디어들이었습니다. 즉, 대중들은 바로 그 미디어들을 향유하며 더 발전한 메타버스를 기대했으나, 지금 메타버스 시장에 나와 있는 서비스들은 기술, 컨셉트, 장르 등 어느 면에서도 유의미한 발전을 이루지 못한, 말 그대로 이전에 존재하던 기술을 재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남아 있는 메타버스의 파편과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는 3D TV가 돌풍을 일으켰던 과거를 뒤로 하고 철저하게 버려진 기술로 전락하는 것도 봤고, 유비쿼터스라는 단어 또한 지난 시대의 단어로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AI는 정확한 아웃풋으로 모든 박자가 맞아떨어지며 화제성으로나 기술-증명적으로나 세상을 호령하고 있는 것을 지금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메타버스는 파편으로라도, 남아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바라는 메타버스가, 메타버스가 아닌 다른 단어로서 돌아오더라도, 그 파편들이 하나하나 몸집을 키워 유의미한 가치를 생산해 내기 시작한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유서 깊은 다른 세계에 대한 대중적 수요와 꾸준히 정도를 걸으며 발전해 온 VR 기술은 건재하기 때문이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개봉하는 [레디 플레이어 투]

모든 컨텐츠 중 가장 유의미하게 메타버스의 이상향을 보여준 것은 [레디 플레이어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말에서 2026년 사이, 영화의 후속작 [레디 플레이어 투]가 개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는 메타버스 시장에게는 단순한 영화 하나가 아닙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를 기대하던 대중들이 한참 못 미치는 유사 메타버스들을 접한 탓에 실망만 할 수밖에 없었으니, [레디 플레이어 투]는 명예 회복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나은 메타버스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오아시스 수준의 서비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언젠가 오아시스 수준의 메타버스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대중들의 기대감을 만족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VR 시장과 그 활용 사례

한국에서는 여전히 큰 화제가 되고 있지 않지만, 북미 VR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입니다. 일례로, 여러 통계에서 VR 게이머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중입니다. 특히 연령층 기준으로는 가장 젊은 10대를 중심으로 VR에 익숙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죠. 최근에는 미국 10대 4명 중 1명이 VR 게임을 한다는 설문조사까지 등장했습니다.
또한 VR을 활용해 사회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례도 늘어났습니다. 미국 메릴랜드 교도소는 COVID-19로 재소자 직업 교육을 지속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자, VR 기기를 활용 및 도입하여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밖을 나가는 것도 힘들어하는 이들의 정신 건강을 치료하기 위한 VR 컨텐츠가 개발되거나, 장애인을 위한 베리어-프리 VR 컨텐츠도 속속들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이상향은 건재하다

메타버스 1차 대유행이 끝난 지금, 우리는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신기술로 등장했던 VR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그 본질을 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3D 공간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영구적입니다. 물론 명징한 정의가 제대로 합의되지 않았고, 오남용되기도 많이 되었지만, 메타버스의 화제성은 증명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지나간 메타버스 유행을, 1차 대유행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2차 대유행. 2차 대유행은 어떻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요?
※ 이후의 이야기들은 2주 뒤의 아티클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참고 자료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