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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with VR, 가능하신가요?

방구석에서 VR을 꺼내는 방법

스마트폰담배의 차이점은 이렇습니다. 담배는 당신의 수명에서 10분을 빼앗아 가지만, 적어도 당신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가져가는 예의를 갖췄습니다. 반면에 스마트폰은 현재의 시간을 조금씩 훔쳐 갑니다. 여기서 5분, 저기서 5분. 그러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85세가 되어 있지요. The difference between smartphones and cigarettes is this: a cigarette robs 10 minutes from your lifespan, but at least has the decency to wait and withdraw all that time in bulk as you near the end of your life—whereas a smartphone steals your time in the present moment, by degrees. Five minutes here. Five minutes there. Then you look up and you're 85 years old. - 찰리 브루커Charlie Brooker,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 미러] 작가
지난 저희 XREAL 매거진의 아티클 중 ‘서랍 속 VR 기기를 꺼내는 방법’이라는 명작이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얼리어답터들에게 간택 받았지만, 정작 그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아 서랍에 갇혀버리는 실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경제적 접근을 기술한 글이었죠. 수려한 글 제목 역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하여 이번 아티클의 첫 소제목 또한 해당 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만 이전 글이 VR을 가진 사람들의 VR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론을 탐구한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는 단순한 VR 사용률 증가를 넘어 ‘일상적인’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을 담아 보았습니다. 즉, 우리가 오늘 알아볼 것은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될,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VR의 현재 그리고 미래입니다.

왜 일상이어야 할까요?

물론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기에 앞서, 왜 VR이 꼭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얻어내야 합니다. 동시에, 이 글에서 말하는 /일상/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스마트폰: 일상성 그 자체

… 그리고 VR은 시간을 훔치지 않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저희가 시간을 ‘기부’한다고 해야겠죠. … and VR robs any minute from you. Rather, it’s fact that you ‘donate’ some minutes to VR. - 신택성, [일상생활 with VR, 가능하신가요?] 저자
글머리에 인용한 찰리 브루커의 말에서 비록 스마트폰이 긍정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VR 기기의 입장에서 그의 말은 그야말로 ‘극찬’입니다. 여기서 5분, 저기서 5분이라니! 당장에 여러분들은 어제 하루 VR 기기를 몇 분이나 사용하셨나요? 혹시 서랍에서 꺼내기는 하셨나요? 물론 일상 개념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언제나 길고 긴 철미학적 이야기…가 동반되고는 하지만, 적어도 VR에게 일상이란 스마트폰이라는 비슷한 출신의 최우등 사례가 있기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벽돌과도 같던 휴대폰은 일상과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으나, 피처폰 단계에서 성공적으로 우리 일상에 안착했으며,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을 필두로 완벽한 보급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거의 모두가 손에 들고 다니는 현대 최신 기술의 집약체가 되기까지. 스마트폰이 이렇게 우리 삶의 5분 10분 그러다 수십 년까지 가져가는 평생 친구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하나로 꼽기 힘듭니다. 그러나 순위 매김 없이 명확한 것들만 나열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죠.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 정말 많다 = 스펙
그런데 사람이 사용하기에 편하다 = UI/UX
심지어 쉽게 휴대할 수 있다 = 크기

스펙: 주요 기능은 다다익선

So, three things: a widescreen iPod with touch controls; a revolutionary mobile phone; and a breakthrough Internet communications device. An iPod, a phone, and an Internet communicator. An iPod, a phone… are you getting it? 그래, 세 가지가 있습니다. 터치 컨트롤 와이드스크린 아이팟, 혁신적인 휴대전화, 그리고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 장치입니다. 아이팟, 전화기, 그리고 인터넷 통신 장치. 아이팟, 전화기... 감이 오시나요? - 스티브 잡스Steve Jobs, 전설적인 아이폰 첫 발표에서
2024년 현재, 스마트폰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음성 통화는 당연하고, 인터넷 연결 기술은 와이-파이는 물론 5G까지 다다랐으며, 수준급의 디스플레이와 스피커로 온 세상의 미디어를 누워서 즐길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뿐인가요? 촬영 기술은 애플과 삼성의 주된 경쟁 포인트 중 하나가 되었고, 서드 파티 앱은 스마트폰의 기능 확장을 반영구적으로 만들었습니다. SMS와 MMS, SNS는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일상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죠.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수천 자의 텍스트를 써 보내며 4시간 동안 유튜브를 봅니다.
물론 ‘모든’ 기능들이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에 여러분이 스마트폰에서 각 어플들의 사용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위의 사례는 제 스마트폰의 모습입니다. 사용 시간이 숫자 그대로 0시간인데, 이는 코로나 이후 비대면 강의가 거의 없어진 지금은 비대면 강의 어플리케이션 ‘코스모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이럴 때 우리는 간단한 행동 하나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꾹 눌러서, 삭제하기.

UI/UX: 눈과 손이 만들어낸 수렴진화

우리는 20년 전에 컴퓨터에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비트맵 스크린을 사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화면에 표시할 수 있었죠. 어떤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인팅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마우스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걸 모바일 장치로 어떻게 가져갈까요? 우리가 할 일은 모든 버튼을 없애고, 그냥 거대한 화면을 만드는 것입니다. 거대한 화면을요. We solved in computers 20 years ago. We solved it with a bit-mapped screen that could display anything we want. Put any user interface up. And a pointing device. We solved it with the mouse. We solved this problem. So how are we going to take this to a mobile device? What we’re going to do is get rid of all these buttons and just make a giant screen. A giant screen.누가 스타일러스를 쓰고 싶겠어요? Who wants a stylus?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철학은 아직도 세상에 큰 반향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확히는 스티브 잡스가 미니멀리즘의 기수로서 활동했기에 예술사조의 자연스러운 변화의 바람에 맞춰 잡스가 트렌드를 주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여튼 애플의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지금도 마니아를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스마트폰 시장이 개막하기 전, 이미 고안되고 있던 문제 해결 분야가 있었죠. UI와 UX. 스티브 잡스 역시 컴퓨터의 오랜 역사 동안 수렴 진화된 ‘모니터 스크린 + 마우스’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스마트폰 스크린 + 손가락’이라는 희대의 터치 컨트롤 UI를 도입했습니다. 이 아이폰의 초기 UI는 지금까지도 스마트폰의 기본값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블랙베리나 ‘수험생 폰’ 같은 기괴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하이엔드 라인업은 물론 저가형 스마트폰도 당연하다는 듯이 해당 UI를 채택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 시장의 붐과 함께 UI/UX 분야의 대발전 역시 이뤄졌는데, 꾸준히 이 스마트폰에서의 UI/UX가 고려하는 것은 여전히 첫 번째 아이폰, 그리고 그 아이폰이 참고했던 20년 전의 20년 전 컴퓨터가 의도한 것과 동일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고, 사람의 손으로 조작하기에 쉬워야 한다는 기본 중의 기본 철칙 말이죠.

크기와 무게: 휴대폰이라는 이름의 힘

한편 휴대의 편의성은 과거 피쳐-폰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벽돌 수준의 초기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기술이 발달하며 크기가 작아지고 무게가 가벼워지니 아직 아이폰이 없던 시절에도 휴대폰은 이미 세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다만 여러 조건에 따라 ‘가지고 다닌다’는 개념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벽돌 휴대폰도 사람이 가지고 다니려면 다닐 수 있는 무게였으나, 그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현저하게 낮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반면 필요에 의해 데스크탑 세팅을 커다란 캐리어에 담고 다니는 사람들도 희귀하게 존재합니다. 하다못해 유명 아티스트의 콘서트 전국 투어와 같은 이벤트에는 차량을 동원하여 특정 전문 장비들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휴대성’이란 개념은 보통 특정한 기준으로 통용되는데, 바로 한 사람이 본인의 힘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정도. 보조로 가방까지는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고성능 노트북이, 휴대성의 마지노선이랄까요?
즉, 다시 정리하자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기능과 강하면 강할수록 좋은 성능
사람의 보편적인 체형과 신체 기능에 맞춘 UI/UX
사람 한 명이 충분히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크기와 무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VR이 추구해야 하는 일상성의 기본 구성 요소를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으로는 부족하죠.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성능과 사용 편의는 다다익선이며, 크기는 UI/UX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한 작을수록 좋다. 하지만 이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두 가지의 공통점에서 우리는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전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람 한 명’에게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걸맞은 제품이, 곧 일상성이 높은 제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이 글에서 사용되는 일상성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어질 내용은 ‘왜 VR이 일상성을 챙겨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전자 제품 보급화와 일상성의 인과관계

출처 : CCS Insight
우선 현재 VR에 대한 문제 인식 중 최우선은 누가 뭐래도 보급화율, 판매 실적입니다. 메타는 3년 내에 이어질 신제품 출시의 실적에 사내 리얼리티 랩스 부문의 운명을 걸고 있으며, 애플 비전 프로의 실적 부진은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흔들기도 했습니다.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전도유망한 시장에게는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수요가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은 제품에게 무한한 투자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보급화와 일상의 인과관계에 대해, 여러분들은 이미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메타가 꾸준히 보급화를 위해 노리는 이유도, 전부 사람들의 일상에서 VR이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오히려 일상성을 갖추고 나서야 보급화가 가능합니다. 순서가 정반대인 것이죠.

사례로 보는 일상성과 보급화의 관계

출처 : 동아사이언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보여준 비주얼 서프라이즈에 의해, 3D TV에 대한 기대감이 활발하게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이미 저런 기술을 갖추고 있다’며 한국에 불어온 3D 위기론에 밀려, 삼성과 LG 등 TV 완제 능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앞다퉈 3D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방송통신사는 3D 방송용 채널 개국을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3D TV는 그야말로 비일상의 표상이 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아바타 2: 물의 길》과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2D 디스플레이나 영화관에서 입체감은 느껴지지 않으며 느끼고 싶다는 니즈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반대의 경우로는 에어프라이어가 있습니다. 10년 전보다 더 이전에 특허 출원된 이 전자 제품은 한동안 아는 사람만 아는 아이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도 지금처럼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6년 이마트 트레이더스 측에서 저가 에어프라이어를 출시, 적극적인 마케팅을 진행한 결과, 에어프라이어 시장은 성공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출처 : MBC
이 두 사례에 대한 분석은 다양합니다. 개중에는 3D TV는 당시 기술의 완성도가 현저하게 낮아서 그런 것이고, 에어프라이어는 대기업의 마케팅이 적중해서 그런 것 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죠. 분명 그런 분석 역시 유의미합니다. 그러나 3D TV 붐은 지금의 AI에 약간 못 미칠 정도로 거대했었고, 그렇기에 3D TV 유행의 몰락은 당시 테크 계의 미스터리로서 수많은 연구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에어프라이어는 유의미한 화제성을 얻어내기는 했으나 가전 중 하나라는 점과 대체할 제품이 많다는 점에 회의론도 적잖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에어프라이어는 다른 말로 ‘자취 필수템’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2018년 한 번 유행이 일어난 데다가, 코로나 발생으로 인해 3D TV보다 더욱 강력한 화제성을 몰았음에도 여전히 시장 안정성에 의문점이 가득한 VR에게 그런 단순한 분석은 무의미할 뿐이죠.
여기서, 3D TV와 에어프라이어 그리고 VR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으로 우리는 VR 보급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세 제품군 모두 ‘전자 제품’이며, 그렇기에 일상성이 곧 보급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전자 제품’이라서 그렇습니다

장담컨대, ‘VR이 전자 제품이기에 일상적인 사용성을 갖춰야만 보급화가 될 것이다’라는 주장을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VR은 AAA급 게임이 나오면 킬러 컨텐츠라고 떠 받들고 있으며, 해당 게임의 유행이 끝나면 비탄에 빠져 다음 왕자님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신세 가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본 글에서는 VR에 대한 그러한 접근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VR의 일상성 담론은 자연스럽게 ‘VR은 게임기 취급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VR이 게임기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논리가 꽤 익숙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일상성게임기 인식 탈피로 이어지는 걸까요?
전기차가 전기 에너지를 열 에너지와 빛 에너지로 변환하는 모습. 출처 : ET auto
전기 에너지를 여러 기관을 거쳐 사용자가 원하는 빛 에너지와 소리 에너지 등으로 변환하는 제품을 우리는 ‘전자 제품’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전자 제품은 전기 에너지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하거나 꾸준히 에너지가 공급되는 환경에서 사용 가능한 것이죠. 이는 전자 제품 개발자들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제한입니다.
따라서 전자 제품이 사용자들에게 선택 받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할까요? 하나는 효율입니다. 전기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변환되는 동안 손실 되는 에너지가 많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또한 가격 측면에서도, 더 많은 돈을 냈으나 제품의 기능이 부족하다면 선택 받을 자격이 없죠. 이렇게 전력 효율과 제품의 가격, 지속되는 비용 지출과 구매 비용 지출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하나로 합쳐 제품의 능력과 비교하면, 이를 한국어로 ‘가성비’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비교 대상이 되는 두 전자 제품이 가성비를 따져 봤을 때 비슷하다면? 이제는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제품군들’에서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요소가, 바로 일상성입니다.

감가상각: 먼지 쌓인 전자 제품은 「 최 악 」이다

2010년 판매량과 2014년 이후 판매량 출처 : 스마트PC사랑
초기 3D TV의 가격은 200~300여 만원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높은 스펙이나 3D TV 기능이 없는 최신OLED TV의 가격 또한 비슷한 수준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초반에는 3D TV가 신흥 세력으로서 약진했으며, 이는 일부 소비자들이 3D TV에 대한 기능을 분명히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4년 즈음부터 시작된 판매율 하락은 거침이 없었고, 이제는 어떠한 반등 없이 그저 ‘고가 TV를 사고 봤더니 3D TV 기능이 있긴 하더라’에 불과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보편적인 가정의 TV 교체 주기를 생각해보면 이는 더욱 심각합니다. 유행을 타고 N번째 TV로 3D TV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N+1번째에는 모조리 일반 TV로 돌아선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되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전자 제품에 일상성이 미치는 영향입니다. 전자 제품은 쓰면 닳습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일부러 시간에 대한 내구성을 약하게 만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소비자들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놀라울 정도로 짧은 편이며, 냉장고와 에어컨 같은 생활 가전 또한 쓰다 보면 낡아 교체를 해야 합니다. 또한 기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받는 것 또한 주요하게 작용합니다. 오래된 에어컨을 꾸준히 사용하는 것보다 새로운 에어컨을 구매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더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전력 효율이 과거 에어컨에 비해 대폭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또한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신제품이 지원하는 기능이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먼저 구매하여, 공기계라는 상상한 적도 없던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전자 제품이 아닌 것들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심각합니다. 식탁과 책상은 장수하는 제품입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아 교체 주기는 매우 깁니다. 의자 또한 험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전자 제품이 아닌 대부분의 제품들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이는 전자 제품의 악랄한 감가상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자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지 않아도 알아서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3년 전 갤럭시 플래그쉽 스마트폰을 지금 구하고 나설 경우 정말 낮은 가격으로 ‘당근’할 수 있죠.

세대 교체: 평소에 많이 사용되면 선택을 받는다

이러한 시장의 특성으로 인해, 전자 제품에게 일상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구매하고 나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면, 전자 제품을 구매할 이유가 없죠. 사례를 찾아 보더라도, 이 일상성이 그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상당히 존재합니다.
평균 가격 200여 만원에 달하는 의류관리기 LG 스타일러, 출시 당시에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회의론이 가득했으나 정작 구매 이후 일상적으로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입증되어 유의미한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만약 평소 집에 돌아온 사람들이 의류관리기를 습관처럼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안정적인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120여 만원을 호가하는 LG 홈브루가 그처럼 애매한 상태입니다. 현재 소비자들 중의 일부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그에 걸맞은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LG는 홈브루의 세대를 교체할 때마다 다양한 전략으로 꾸준히 대중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에어프라이어 또한 수준 높은 조리법이 인터넷에 공유되며 사용처가 늘어났습니다. 이 영향으로 인해 특이한 튀김기 취급을 받던 에어프라이어는 일상적인 요리 도구이자 자취 필수템으로 포지셔닝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 PC 또한, 최초로 발표되었을 때 수요에 대한 의문점이 존재했었습니다. ‘대체 왜 데스크탑 PC도 아니고 스마트폰도 아닌 애매한 것을 사용하겠어?’ 라는 의문은 ‘적절하게 거대한 스크린’이라는 특장점과 ‘허용가능한 휴대성’ 그리고 ‘개인 규격에 맞춰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사이즈 마련’이라는 일상성 저격 전략으로 성공한 것이죠. 물론 애플이 3개월 전 내놓았던 신형 아이패드 프로 광고 《Crush!》에서처럼 기능 자체의 우수함 또한 태블릿 PC의 일상화 그리고 보급화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광고 자체의 논란은 제쳐두고 말이죠.
정리하자면, 순전히 물리적인 상식에 따라, 전자 제품은 애초 ‘특정 개인의 일상’에서 꾸준히 사용되어야만 가치가 있습니다. 습관처럼 또는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가끔 그리고 어쩌다가 한 번 사용하는 ‘특정 개인의 비일상’을 위한 전자 제품은 대부분 사치품으로 분류되며, 애초 그 종류는 대중화된 경우가 거의 없기에 그 사례 자체도 많지 않습니다.
물론 유일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급화율이 꽤 높은 제품군이 단 하나 있습니다.

VR이 게임기 취급을 받는 이유

출처 : Microsoft / SONY
게임기는 지금까지 정리된 논리에서 유일하게 빗겨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임이라 하면 상당히 비일상적인 행동인 것 같은데 말이죠. 물론 한국에서는 상당히 낮은 판매율을 보이기는 하나, 북미 시장에서 ‘게임’이라 하면 데스크탑 PC보다 위와 같은 콘솔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따라서, 굳이 특정 전자 제품이 일상성을 갖추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게임기는 예외가 맞습니다. 하지만, ‘게임기’가 예외인 것이 아니라, ‘게임’기라 예외인 것입니다.
출처 : Quatr.us / Bell of Lost Souls
‘재미를 위한 행위’인 놀이라는 개념을 전자식으로 구현한 것. 이것이 바로 게임기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놀이가, 더 좁게는 전자 오락이, 비일상일까요? 아니라면, 일상일까요? 역사 속에서 놀이를 찾아보면 육체 노동과는 거리가 먼 귀족 또는 왕족들이 누리는 특혜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사위같은 유물들은 일반 평민들도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조선 시대에서 비롯된 ‘산통’이라는 단어 또한 백성들 사이에 횡행했던 사행성 뽑기 놀이 도구를 지칭하는 것이죠. 나아가 지금도 그렇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방치형 게임을 켜 놓는 이들이 많습니다. 게임 전문 스트리머와 프로게이머들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게임을 재미있게 그리고 잘 하는 것이 직업이죠. 이제는 예전처럼 게임을 질병화하려는 이익 집단들의 선동이 잘 통하지 않는 이유 또한, 게임이 익숙해지고 일상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찾자면, 게임은 문화의 일종입니다. 영화와 예능, 책과 음악과 같은 분류입니다. ‘가장 일상적인 전자 제품’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폰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데스크탑 PC에서는 콘솔 게임기 유저와 같은 서버에서 같은 게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말인즉 게임은 일상과 비일상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개념, 그러나 요즘 기준으로는 일상에 더욱 가까운 개념입니다. 그래서 게임기는 취급이 상당히 예외적입니다. 맥주 취음이라는 특정 목표만을 위해 제작된 LG 홈브루보다는 훨씬 일상적이지만, 게임을 포함한 다양한 기능을 갖춘 태블릿 PC보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지금 VR이 게임기와 유사한 취급을 받는 이유입니다. 다른 말로는 아직 VR이 충분한 일상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VR 수요가 부족해 전반적으로는 시장이 불안정한 상태인 것입니다. 전자 제품인 이상 VR은 반드시 일상성과 보급화율이 비례하며, 그렇기에 VR의 보급화 및 VR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사람 한 명’에게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걸맞은 제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비로소 VR은 서랍은 물론 방구석에서 나오게 됩니다.

+ AR: 별개의 기술

글의 흐름과 다른 궤도의 이야기지만, AR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AR이야말로 일상성이 중요한 기술이 아니냐는 반론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온갖 영화들에서도 진작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AR의 아이디에이션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현실 공간 속에서 일상을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VR은 그 목적부터가 다른 세계의 구현 내지는 현실 공간의 확장을 위함이었습니다. 즉, VR과 AR은 기술의 형태가 비슷하여 확장현실, XR로 합쳐 불리울 뿐 이미 세부 계통은 완전히 분리된 ‘다른 기술’입니다. 당장 XR이라는 단어 자체가 AR과 VR의 공통점이 ‘확장된 현실’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AR과 VR이 일상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AR이 일상 보조 역할을 한다고 VR이 반드시 비일상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이유

이제, VR의 일상성 증진에 대한 충분한 목적성을 갖춘 채 지금의 VR을 확인할 차례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VR은 상당히 비일상적인 상태이기 때문이죠. 크게 3가지 원인으로 정리하자면, 물리적인 이유생소함의 문제 그리고 컨텐츠 차원의 어려움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시야 전체를 차지하는 미디어

VR의 지배적인 장점이자 단점은 미디어가 시야의 전체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만약 여러분이 VR 공간에서 여러명을 만나더라도, 하나의 VR 장치로 여러 명이 해당 가상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68년 개발된, 이름부터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라는 제품이 현재 VR의 시초이자 지금까지의 대표적인 형태이며, 헤드-마운트라는 단어가 있는 한 1인용 장치의 취급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1인용 장치라는 것이 VR의 비일상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전자 제품이 일상성을 갖기 위해서는 ‘사람 한 명’에게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걸맞은 제품이 되어야 하는데,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평생 혼자인 삶이 보편적인 일상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뭐 보고 있어?
얼마나 재미있나 보자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이 단점은 확연하게 부각됩니다. 여러분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다가, 갑자기 옆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장치를 손에 들고, 친구의 눈 앞에 가져다 대면 되죠.
하지만 VR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쓰고 있던 VR에서 머리를 빼내고, 머리 망가진다며 손사래치는 친구에게 굳이 VR을 씌워서, 컨트롤러까지 쥐어주고 나서야 여러분이 경험한 재미를 똑같이 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거친, VR에 큰 관심이 없던 친구의 감정은 재미보다는 짜증이 앞설 것입니다.

사실상 불가능한 멀티태스킹

또한 시야에서 미디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멀티태스킹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집니다. 사회적으로 지양되는 편이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다니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죠. 여러분은 패스스루가 없는 VR을 쓰고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나요? 놀랍게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림에서처럼 VR을 쓰면 시야의 아주 작은 틈으로 현실 공간이 보이니까요. 대신 역시 그림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내리깐 채로 걸어야 할 것입니다. 수치 상으로 계산하자면, 스마트폰을 하면서 주변시로 볼 수 있는 현실 공간은 시야의 80%에 달합니다. 하지만 VR의 주변시는 사실상 없는 것이죠.
정말 이렇습니다. 정확하게.
그렇기 때문에 VR은 일상 생활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걷기 뿐 아니라 다른 활동들 또한, VR 헤드셋을 쓴 채로 좁은 틈 사이를 통해 진행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본 학회의 모 VR 개발자는 개발 과정에서 VR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불편한 멀티태스킹 과정을 거칠 바에는, 풍부한 공간지각력으로 VR 헤드셋을 착용했을 때의 시각적 자극을 상상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놀라운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패스스루라는 기능이 있는 것이긴 하죠. 하지만…

커다란 고글 쓰고 다닐래? 가지고 다닐래?

애플의 비전 프로는 수준급의 패스스루 기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비전 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 여러분들은 헤드셋 외부 현실의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걸어다니기를 포함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직 큰 문제가 하나 남아 있죠. 아이폰을 처음 발표하던 스티브 잡스의 말투를 그대로 가져오자면,
출처: X(구 트위터)의 @0xgaut 계정
누가 비전-프로 걷기를 원하겠어요? Who wants Vision-Pro Walking? - Who wants stylus? 의 변형
애플이 XR 헤드셋 개발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VR 업계가 들썩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는 분명 비주얼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애플의 디자인만을 사랑하는 팬덤이 생길 정도로 수려한 그들의 미적 감각이, 과연 XR 헤드셋에서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과연 애플은 HMD를 길거리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출처 : Apple
아니었습니다. 물론 출시 직후 몇몇 호쾌한 얼리어답터들은 자신있게 비전 프로를 쓰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미 비전 프로의 화제성이 사라진 지금은 애플의 패스스루가 아닌 질소 70% 나머지 30%의 ‘에어 패스스루’를 사용하며 현실을 걷고 있습니다. 애플도 현재 직접적으로 실내에서 사용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람 한 명’에게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걸맞은 제품이라기에 애플의 비전 프로는 당연히 부족합니다.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차이점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 HMD는 약간의 억울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스마트폰도 언제나 시각적으로 일상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별의별 이유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우리의 시야에 담지만, 활용이 전부 끝나면 주머니에 넣어 둡니다. 이는 분명 불공정한 비교입니다. HMD는 계속 착용한 상태로 상정했으면서, 스마트폰을 계속 보고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출처 : Apple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또한 현재 HMD의 한계를 증명하는 점입니다. 휴대가 꽤 부담스러울 만큼 부피가 크기 때문이죠. 스마트폰이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수납과 사용이 가능한 것은 한 손에 잡히는 사이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HMD는 다른 의미로 한 손에 잡히며, 웬만한 가방에 넣기도 어려운 사이즈의 케이스입니다. 심지어 컨트롤러까지 있으니, 핸드 트래킹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컨트롤러 2개를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게임기가 아니지만 게임기입니다

출처 : Nintendo
결과적으로 이런 단점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VR 디바이스와 비슷한 처지의 휴대용 전자제품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등장했지만, 바로 닌텐도 스위치입니다. 스마트폰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나, 어떻게든 휴대는 가능하며, 즐길 수 있는 컨텐츠는 다른 것보다 비교적 비일상적인 ‘게임’뿐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물리적인 요소들에 의해 지금의 HMD는 지금의 닌텐도 스위치보다도 더욱 비일상적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VR로 향유할 수 있는 컨텐츠 역시 대부분 비일상적입니다. 퀘스트 스토어에 올라온 대다수의 앱이 게임 앱이며, 그나마 킬러 컨텐츠로 자리잡을 만한 [하프라이프: 알릭스] [비트 세이버], [고릴라 태그] [VRChat]은 모두 잘 만든 싱글 게임 또는 메타버스 전단계에 위치한 VR 온라인 게임입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현재 VR의 비일상성이라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일상이 되려 합니다

이처럼 일상이 아니면 성장할 수 없지만 일상이 아닌 지금의 VR, 그렇다면 메타를 비롯한 대기업들과 관련 학계는 이 엄청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글의 흐름에 따라 쉽게 예측하실 수 있겠지만, 당연히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일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보급화와 범용성, 멀티태스킹과 인간-대-인간 상호작용과 같은 관련성 높은 단어들로 시장은 꾸준히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VR의 일상성을 위해 현재 시장에는 어떤 흐름이 있고, 또 우리는 어떤 흐름을 만들어야 할까요?

VR 콘서트 흥행의 이등공신

출처 : AmazeVR
VR 콘서트의 흥행이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심상치 않아졌습니다. 국내 기업 AmazeVR이 메가박스와 손잡고 주최한 에스파/카이/TXT의 VR 콘서트가 매진되고 또 해외 진출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기획의 승리에는 단연코 VR 콘서트의 특장점이 꼽힙니다. 티케팅도 어려우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나서야 겨우겨우 콩알만한 ‘최애’를 볼 바에는, VR을 착용하고 눈과 코 앞에서 나의 ‘최애’를 마음껏 보는 게 훨씬 낫다는 발상의 전환이죠. 하지만 동시에 AmazeVR의 VR 콘서트는 큰 단점 또한 해결했기에 흥행을 이끌어냈습니다. 바로 영화관을 빌린 것이죠.
영화관에 모여, 각자 VR을 착용하고 같은 콘서트를 관람하는 것은 개인과 VR의 관계에 있어 여타 VR 컨텐츠와 다를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관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명백하게 느껴진다는 것. 에스파 VR 콘서트에 참석한 그 누구도 에스파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TXT VR 콘서트를 보고 있는 그 누구나 TXT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같은 마음을 가진 팬들이 바로 옆에서 같이 열광하고 같이 떼창을 하고 있습니다. 시각적인 근거와 청각적인 근거, 그리고 인기척이라는 촉각적 근거에 따라, AmazeVR이 대여한 메가박스 3관은 그 순간 콘서트 맨 앞 줄임이 틀림 없습니다. 특히 해외 가수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떼창의 국가’에서는 그 효과가 배가 됨은 분명하죠.
따라서 VR 일상화의 실마리는 오히려 이와 같은 ‘이벤트’ 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VR 콘서트는 그 단어의 조합부터가 상당히 비일상적인 경험입니다. 특히 그 진행 과정은 일반 콘서트와 똑같이 티케팅을 하고, 똑같이 특정 일자를 기다려서, 똑같이 특정 위치에서 관람을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VR 콘서트와 실제 콘서트를 비교하면 무엇이 더 일상적인가요?
2만원 짜리 티켓을 구매하고 영화관에 가서 VR을 쓰고 같은 팬들과 눈 앞에서 연예인을 보는 것과
222만원 짜리 암표를 구매하고 콘서트장에 가서 같은 팬들과 저 멀리 연예인을 보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일상에 가까운 행동일까요? 무엇이 더 상식적인 행동일까요?
VR 콘서트는 2만원
현실 콘서트는 222만원
즉, VR보다 상대적으로 더 비일상적인 기존 경험을 VR을 통해 제공하는 경우에, 오히려 VR의 일상성이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VR 콘서트를 관람한 사람들은 콘서트를 칭찬하기에 급급합니다. VR 덕분에 그렇다며,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이 VR 콘서트 관람객들의 반응과 아주 비슷한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픽사 스토리: 룩소 주니어, 이야기의 힘

출처 : IMDb
영화의 작가이자 감독인 존 래시터는 시사회 후 미국의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인 짐 블린이 그에게 다가와 질문을 했던 일화를 회상합니다. 컴퓨터 그래픽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일이었기에, 래시터는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기술적인 질문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블린은 부모 램프가 엄마인지 아빠인지 궁금해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래시터는 자신들이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The film’s writer/director John Lasseter has recalled how after the premiere he was approached by Jim Blinn, a renowned American computer scientist, who had a question. Being at a computer graphics conference, Lasseter expected it to be one he couldn’t answer, something about the technological processes behind the film. Instead, Blinn wanted to know whether the parent lamp was a mother or a father. It was at that precise moment Lassester knew they had struck gold. - link iconLittle White LiesIn praise of Luxo Jr – the short film that changed cinema
당시 픽사는 신작 《룩소 주니어》에 새로운 애니메이팅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이전의 미완성 느낌을 주는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넘어, 움직임에 끊김이 거의 없는 새로운 기술이었죠. 다만 감독인 존 래시터는 이 신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원리로 작동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가 해당 신기술을 사용한 이 작품이 성공했다는 것에 확신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관객들이 기술이 아닌 내용에 집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의 사례로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도 이와 비슷합니다. 수십 개의 그래픽 스타일을 하나의 씬에 담는 대담한 도전을 했으며, 동시에 영화 내용에 대해서도 호평 받은 작품이죠.
출처 : 소니 픽쳐스 코리아
VR 콘서트 관객들은 물론 VR 구매에 대해 조금 더 우호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VR 콘서트를 관람하는 동안 진심으로 에스파와 카이, TXT에게 몰입했으며, 그렇기에 집에 돌아가서도 친구들에게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콘서트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쏟아낼 수도 있습니다. VR 콘서트라는 것에 신경 쓰기 전에, 카리나가 얼마나 아름답고 카이 춤선이 얼마나 수려하며 TXT의 신곡이 얼마나 잘 뽑혔는지 말하고 다닐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AmazeVR의 VR 콘서트가 VR의 일상화에 기여하는 바입니다. 비일상적으로 대단한 그들의 최애에 대한 열정 앞에서 VR은 이미 일상적인 것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적어도 그들에게 VR은 에스파를 좋아하는 ‘사람 한 명’에게 걸맞은 제품임이 확실합니다. VR 콘서트 흥행의 이등공신은 VR 기기이며, 일등공신은 바로 팬들의 열망입니다.

멀티태스킹 기능 추가하기

출처 : UploadVR 아티클 최하단 링크 참조
최근 메타에서 퀘스트 라인업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르기에는 심리스 멀티태스킹, 바로 VR 버전 PIP(Picture in Picture)로, VR 특성 상 ‘Place in Place’나 ‘Picture in Place’라 불러야 하겠죠. 이 기능은 유저가 어떠한 앱을 구동하고 있든, 작은 창으로 다른 앱을 구동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아직은 인터넷 등 2D UI를 사용하는 앱을 구동하는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추후 기능 확장에 대한 여지가 많으며 테스트 단계에서는 VRChat 내에서 VRChat을 구동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더욱 나아진 멀티태스킹 능력을 구현할 VR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AR이 스마트폰처럼 현실의 배경에 미디어 조각을 띄우는 시야 비율을 갖춘다면, VR은 사람의 주변시와 주변 환경에 맞춰 시선에 따라 변화하는 주변시 패스스루를 적절한 비율로 제공하면 됩니다. 이를 보행 모드라 부를 수도 있겠죠. 이후 카페에 앉거나 또는 일터에 도착한 뒤에는, 작업 모드로 전환한 뒤 패스스루의 비율을 시야에서 줄이면 됩니다. 작업 모드에서는 HMD 외부의 센서들이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패스스루를 필요에 따라 제시합니다.
물론 제 아이디어가 비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메타가 직접 VR 환경에서의 멀티태스킹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죠. 메타는 분명 VR의 일상화로 향하는 실마리를 몇 가지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사이즈를 줄이거나 집어넣거나

출처 : Road to VR
출처 : Disney
출처 : CCS Insight
다만 ‘사람 한 명’에게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걸맞은 제품이 되기 위해 필요한 휴대성 만큼은 정공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무게와 부피를 줄여갈 수밖에 없죠. 위에서 사용된 그래프를 다시 가져와 보면, 2018년 처음 스탠드-얼론 VR이 출시된 이후 VR 시장의 주력 라인업은 명백히 스탠드-얼론 제품입니다. PC 테더링이 필요한, 휴대가 불가능한 제품은 이미 대중들을 향한 시장에서 논외로 빠져버렸다는 뜻이죠.
무게와 부피 문제는 거의 모든 VR 관련 기업들이 인지하고 있는 주적입니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메타 퀘스트 스토어에 VR 영상 같이보기 앱을 올린 Bigscreen 사의 ‘Bigscreen Beyond’가 있는데, 성능과 착용감 측면에서 부족할지언정 그 사이즈 만큼은 확실히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VR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인식을 심어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의 HMD와 유사한 크기에 달하고 있죠.
출처 : CDPR - Cyberpunk 2077
조금 더 먼 시간대로 나아가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에 등장하는 브레인댄스라는 최고의 사례가 있습니다. 작중 묘사되는 브레인댄스란 현실에서 뉴럴링크와 싱크론 등이 추진 중인 BCI 기술의 최종단계에 해당되는 기술입니다. 위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장치의 사이즈는 안경 수준의 부착형 파츠 2개로 이뤄져 있으며, 누운 채로 3D 공간 영상을 관람하고 그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인셉션》의 꿈 침입 장치를 본인에게 직접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준의 작고 가벼운 장치라면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쉬울 것입니다.
출처 : 뉴럴링크
출처 : TED
현실의 BCI 기술은 신체의 움직임 없이 전자 제품을 조작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VR 시장에게 이는 컨트롤러 장비를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VR의 휴대성이 유난히 저조한 이유가 큰 HMD에다가 두 개의 컨트롤러가 따라 붙기 때문인데, 이들을 휴대할 필요가 없다면 VR은 더욱 일상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당장에 애플의 비전 프로가 장난식으로라도 길거리에서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핸드 트래킹으로 기본 조작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메타의 HMD를 착용하고는 장난이라도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었습니다.

메타버스 개념의 정상화

VR의 일상성을 위해 앞서 꾸준히 견지한 ‘사람 한 명’에게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걸맞은 제품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려면, 필연적으로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솔루션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에어프라이어를 잘 만들었고, 아무리 아이패드가 일상성을 충분히 고려한 걸작이더라도, 이마트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애플의 신들린 이미지 메이킹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에어프라이어와 태블릿 PC가 안정적인 시장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VR 또한 기술적으로 일상성을 갖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대중들에게 유효한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게도 메타버스입니다.
위 이미지는 본 아티클의 주제와 그 어떤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그러나 지금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어디로 가 있는 것일까요. 현재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알고 듣고 쓰는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VR도 아니고, 유의미한 3D 가상 공간도 아니며, 무엇보다 ‘일상’은 커녕 ‘일상 보조’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보편적인 게임보다도 더 일상성이 결여되었으며, 오히려 존재 자체가 반감을 생성하는, 일상과 거리가 먼 ‘무언가’일 뿐입니다. 이는 저희의 이전 아티클, “메타버스는 왜 유행했을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단어 /메타버스/의 현주소입니다.
출처 : Disney
그러나 메타버스만큼 ‘VR은 일상이 될 수 있다’라는 명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컨텐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에서, 주인공은 게임을 하고, 쇼핑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명예를 얻어, 부조리에 저항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VR의 일상성이 유의미한 가치를 갖기 위해, 메타버스 개념의 정상화는 커다란 황금 열쇠가 될 것입니다.

킬러 컨텐츠라는 허상에 매몰되지 말 것

현재 VR 시장에게 가장 큰 과제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로 킬러 컨텐츠입니다. 킬러 컨텐츠가 없어서 사람들이 VR을 구매하지 않고, 킬러 컨텐츠가 없어서 VR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못 잡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킬러 컨텐츠 타령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3D TV도 똑같은 문제에 빠져, 똑같이 고민하다가, 킬러 컨텐츠의 부재라는 문제 인식을 하고도, 결국 킬러 컨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실패한 것으로 끝나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3D TV에게 부족한 건 킬러 컨텐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D TV에게 결여된 것은 다름 아닌 일상성이었죠.
따라서 VR은 3D TV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VR은 각자의 판단 기준에 따라서도 쉽게 달라지는 킬러 컨텐츠라는 상상 속의 천사를 쫓느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킬러 컨텐츠라는 것이 실존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일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열쇠를 만들어 나갈 것

현재 VR 시장은 누가 뭐래도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 VR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혹시나 내가 너무 과신하는 게 아닐까?’ 라는 고민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며, 이는 메타 리얼리티 랩스의 경영난으로 인해 숫자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주장하건대, 이러한 문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일상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VR이라는 제품을 엄청난 별종이 아닌 하나의 전자 제품군으로 받아들이고, 침착하게 전자 제품으로서 VR이 소비자들에게 선택 받기 위해서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지 고민한 결과입니다. 스마트폰의 아성은 너무 공고하더라도, 적어도 태블릿 PC와 노트북과 유사하며, 닌텐도 스위치와 같은 게임기보다는 앞서는, 우리 일상 속 고유의 포지션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위해 제가 제시한 순진무구한 해결책 그 이상의 아이디어들과, 그것들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아직 이 세상에 많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일상적으로 VR이 보이기는 커녕 당장 나의 서랍에서도 쉽게 나오지 않는 VR이 충분한 일상성을 갖춰내기 위해서는, 킬러 컨텐츠와 같은 운과 요행에 기대서는 안 됩니다. 오직 VR 기기 본연의 변화와 혁신만이, VR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을 현실로 바꿔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동기부여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언제나 가져오는 이야기로, 이 길고 긴 아티클의 끝을 맺고자 합니다. 제 아티클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야. 왜냐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 가장 현실적으로 사는 법이니까!! - 가스파드의《전자오락수호대》 중에서, 흐릿한 기억을 바탕으로.
[ 작성자 : XREAL 신택성 ]

참고자료